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5134 추천 수 0 댓글 0

 비 오는 날 산에 오르는 맛은 색다르다. 보통 사람들이야 미친 놈이라고 하겠지만 여름철에 속옷은 물론 등산화까지 흠뻑 젖은 채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본 사람은 그 즐거움을 안다.  홀딱 벗고 물놀이하던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 같은 게 있다.

 새벽에 폭우가 한차례 거창하게 내리고, 전국적으로 최고 1백mm까지 쏟아진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59산우회원들이 모였다. 8월17일, 전북 무주 赤裳山을 오르는 날, 교대역 1번 출구 앞이다. 요즘은 지각하는 사람도 없다. 예정시각 7시30분 이전에 약속한 멤버들이 모두 도착, 칼처럼 정시에 출발했다. 잠실역에서 부근 회원들이 합류해 모두 22명이 됐다.

 부부가 함께 미친 팀은 안녹영, 민병수, 우재형, 정승철, 김해강, 백언빈, 이원구 등 모두 일곱쌍이다. 혼자만 미친 자들은 김상열, 권정현, 이동욱, 송영문, 이태극, 명정수, 노병선, 정신모 등 여덟명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거세졌다. 무주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노닥거리다 어죽으로 유명한 금강식당에서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여도 괜찮다는 대안이 나오자 다른 편에선  폭우만 아니라면 무조건 올라가자고 했다. 무더위 속이라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땀으로 흠뻑 젖으니, 비를 맞으나 안 맞으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다행히 충청도를 벗어날 무렵 비는 슬그머니 그쳤다. 11시반쯤 버스에서 내리니 시커먼 하늘에선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요즘 말로 단체 인증 샷을 찍은 뒤 모두들 배낭을 메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경사가 급했다. 그러나 산길은 예쁘장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평평하고  커다란 돌들을 차곡차곡 깔아놓은 계단 위를 적당한 키의 나무들이 완전히 덮고 있어 운치가 그만이었다. 

 경사는 계속 가팔랐지만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놔 견딜 만 했다. 30분 이상을 올라가니 바람도 가끔씩 불어줘 땀을 식힐 수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 바람이 있고없고는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난다.

 선두는 언제나 나이를 잊고 질주본능에 불타는 김해강, 이원구, 권정현이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니 얼마나 빨리 치고 나갔는지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두시간 반만에 최종 목표인 안국사에서 만났다. 두번째 팀에 속한 명정수, 이동욱, 정신모와는 거의 30분 앞서 도착했단다. 당초 명정수와 2진에 속했던 노병선은  뒷 팀을 핑계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늑장을 부리다 중도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산행 중간부터는 운무 속이었다. 20~30m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전후좌우가 안개였다. 가끔씩 바람이 안개를 몰아가면 또다른 안개가 몰려왔다. 공상 소설 속의 몽환적 분위기였다. 혼자 올라오던 노병선은 중도에 몇차례나 '야호'를 외치며 앞서간 일행을 찾았으나 번번이 불통이었다. 그러자 슬며시 무서운 생각이 들더란다. 그럴 만도 했다. 아마도 납량 특집 무대의 한 복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산 속은 이처럼 신선의 세계였으나 정작 적상산의 절경은 볼 수 없었다. 추락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산길과 나란히 가는, 바위 절벽의 아찔함을 전혀 몰랐다. 향적봉과 두문산을 거쳐 남덕유에 이른다는 장대한 스카이라인도 없었다. 보이는 건 운무에 파묻힌 우리 일행뿐이었다. 안내 팻말을 정확하게 따랐지만 적상산 정상도 못 봤다. 모든 팻말에 '안국사'  뿐이었지 '적상산'은 전혀 없는 것이 이상했다.  

안렴대를 코 앞에 두고 빗방울이 서너개 듣기 시작하자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스틱을 매단 뒤 우산을 꺼내들었으나 안국사에 도착할 때까지 우산을 펼 필요가 없었다. 전국적인 폭우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 안 맞고 산행을 마친 것이다.

 택일이 절묘했다, 산우회의 내공이 쌓였다, 제갈공명보다 낫다는 등 온갖 덕담들이 오갔다. 동기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재미의 하나다. 뒤늦게 아장아장 팀들이 안국사에 도착하자 슬금슬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산행은 없었다.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된 덕분에 안국사 주차장에서 우리가 빌린 관광 버스를 타는 것으로 산행이 끝났기 때문이다. 양수발전소의 상부 댐, 赤裳湖의 전망대는 버스를 탄 채 지나쳤다. '전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산행시간은 짧았지만 온 몸이 땀으로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리 준비한 마른 옷을, 버스에서 갈아입는 것은 산행의 마지막 기쁨이었다. 酒類派들은 금강식당에서 거의 각 2병씩 마셨다. 소주 도수가 약해진 방증임에도 본인들은 노익장이라고 믿는 듯 했다.

 제일 행복했던 인물은 석달만에 나타난 노병선이었다. 매운탕에 소주에, 어죽까지 그에게는 생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상경 길의 버스에서도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비는 완전히 그쳐있었다. 하루 종일 오가는 빗 속에서 용케 그 사이만 뚫고 다닌 셈이다. 다음 달(9월)엔 문경 운달산으로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