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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산우회의 10월 광천 오서산 산행은 장보기도 곁든 별미 산행이었다.
서울 출발 전부터 여성대원들은 김장철 주부답게 오서산보다도 가을김장 젓갈 사냥이 버스 속 화두였다.

과연, 산행이 끝나고 내릴목인 보령 오서산자연휴양림 인근 토종닭 백숙집에서부터 장보기가 우연찮게 시작됐다.
닭뜯기를 끝내고 식당을 나서는데 막 수확한 싱싱한 표고버섯이 파도처럼 백숙집으로 밀려들면서 표고 波市가 우리 대원들 앞에 좍 펼쳐졌다. 한 가슴 가득 들고 의기양양하게들 줄지어 차에 오른다.

이어 광천 젓갈 장터 행.
표고를 썩 즐기지 않아 표고사냥엔 끼지 아니했지만, 젓갈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터라 곧 만날 젓갈 장터는 큰 호기심으로 기다려진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광천 젓갈시장 "XXX 토굴 숙성 젓갈" 집 앞에 차를 댔다. 제일 큰 가게인 듯, 버스 너댓 대쯤 세울 만큼 너른 주차장까지 갖췄다.

우르르 몰려 든 새우젓 통. 특육젓, 육젓, 오젓, 그리고 추젓통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
헌데, 김장 타령하더니 가을김장용 추젓 앞엔 아무도 관심 없고 모두 제일 비싼 특육젓 앞에만 몰려 서있다.  
김장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 나도 얼쑤 특육젓 대열에 합류했다.

새우 한 마리를 집어 입에 넣고 오른쪽 어금니로 지긋이 깨물어 소금기 서린 육즙맛을 음미한다.
이것은 새우젓 鑑識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육젓은 얇은 껍질, 통통한 살, 달착지근한 맛이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이놈이 껍질은 굳고 단맛도 돌지 않는다.
"어, 왜 달지가 않지?"
누군지 한 여성대원이 단박에 지른다. "좋은 거예요!"
내가 이런 자리에서 내 소견을 밀고 나갈 자신도 없으려니와, 60년을 넘어 살았을 그 주부의 말을 따르는 것이 잘 하는 짓일 게다.
"큰 통 하나 주소."  
이렇게 해서 특육젓 한 통(1킬로그램)을 손에 쥐었다. 삼만원.

이어 옆자리 굴젓 판매대.
토굴 숙성의 본때는 바로 굴젓이 아니던가!
통에서 한 놈을 집어 입안에 넣고 혓바닥에 가득히 굴린다.
"음, 역시 이 맛이야!"
프랑스의 명품 허끄풔(Roquefort) 치즈도 맛을 어찌 여기에 견주랴.
짠 듯 달고 아릿하고도 킁큼한 향취가 입안과 비강을 그득히 적시며 혀 속에 깊숙이 배어 든다.
미리 담아 두었다는 큰 통(1킬로그램) 하나를 얼른 달래서 값을 치른다. 만 오천원.
단돈 사만 오천원으로 마누라를 흡족하게 해줄 수 있는 오늘 저녁이 상상으로 아늑하게 닥아 온다.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굴젓 뚜껑부터 열었다.
한 놈을 집어 혀끝에 올려 놓는다. 그 향미를 한껏 기대하며.
"어?! 다르다!"
아무 향기가 없다. 씨알도 조금 더 굵다.

집사람이 드디어 말문을 연다.
"난 꼭 맛본 통에서 담아 달라고 해요. 굴도 중짜 양식굴이예요. 새우도 우리 께 아닌 거 같애요."
하긴 처음부터 우유빛 우리 새우보다 색갈이 붉다는 느낌이었었다.
"새우젓이나 굴젓이 제 꺼라고 하기엔 너무 싸요. 제대로 된 우리 꺼라면 그 가격으로 나올 수 없어요."
집사람이 계속한다. "내 벼를 주고 눈앞에서 도정해도 수입쌀과 섞여 나오게 하는 세상이예요."
그리고는 오늘을 결론한다.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사온 것 같아 아무 말 안할려고 했지만, 다시는 당신 혼자 밖에서 이런 거 사오지 말아요."

되짚어 보니 관광버스 기사도 이런 걸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대원들과 함께 산에 오르길 중도 포기하고 내릴목 오서산자연휴양림에 미리 가 있기로 하고 버스로 움직일 때, 기사는 "어머님들이 광천 젓갈시장에 가자고 하시는데 거긴 아녜요. 여기 오신 김에 토굴도 한번 보시고 다른 데로 가셔야 해요"라고 그답게 터득한 정보를 쏟아 냈었다. 시간만 좀더 여유가 있었으면 아마 그리 됐었으리라.

광천 젓갈 장보기는 이렇게 해서 내 기억 속 씁쓸한 한 토막이 되고 말았다.
감식을 구매로 이어가는 내 행동양식엔 天痴같은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 박인순 2008.11.03 16:24
    무올, 마나님에게 야단 맞어 유감이네. 나는 마누라가 직접 골랐으니 뒷얘기가 없네. 천곡
  • 유근원 2008.11.03 18:03
    천곡, 그게 바로 天痴와 天鵠의 차이인가 보네. 역시 난 무올이라네, 무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