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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14:16

당나귀들의 경주

조회 수 4597 추천 수 0 댓글 1




http://www.cyworld.com/bigboys매주 토요일 청계산으로 가던 자유산행을 소요산으로 가자는 제안이다.
의정부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있는 한붕섭 동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특별산행이다.
2008년 10월18일(토) 10시까지 소요산역에 집합이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한참 가는데 안녹영 총무에게서 전화다. 어디쯤 오고 있느냐는 확인 전화다.
안 총무는 도봉산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동두천역까지 온 다음에
동두천에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로 소요산 입구까지 오라고 자상하게 알려준다.
소요산역까지 가는 1호선 국철이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도봉산역에서 소요산행 국철을 바로 탈 수 없다는
전갈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소요산행이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면 10시까지 도착은 어려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그의 말이 맞았다.
도봉산역에서 갈아탄 국철은 동두천이 종점이란다.
안 총무가 일러준 대로 동두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소요산 입구까지 가기로 마음먹는다.

동두천 전역인 보산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10시 5분전이다. 옆자리의 촌로가 나에게 일러준다.
보산역에서 내려 조금만 기다리면 소요산행 국철이 ‘바로’ 온다고 보산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안 총무와 통화한 내용을 엿들은 모양이다. 나는 그 ‘바로’ 온다는 소리에 그리고 진지한 그의 모습을 보고
조금전 안 총무가 자세하게 일러준 것은 홀딱 까먹고 보산역에서 내렸다.
그 ‘바로’는 그의 기준이었다. ‘바로’ 온다는 국철은 결국 15분여를 더 기다려서야 탈 수 있었다.

30분이나 늦게 소요산역에 도착했다. 국철에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역에 내리니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개찰하는데 줄이 열차 길이보다 더 길다.
아니나 다를까 소요산 입구는 시장바닥이다. 우천 정병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앞선다.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생각해서 행렬을 앞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정병호를 만났을 때 미안한 감정에 그에게 제대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일행은 이미 출발했고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은 처음부터 계단으로 시작되더니 계속해서 급경사로 이어진다.
조급한 마음에 추월을 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철 기둥에 밧줄로 이어진 급한 산길은 더욱 더 추월불가다. 할 수 없이 일행의 뒤만 쫓아가려는데
정병호는 밧줄로 이어진 외길을 벗어나 산으로 냅다 치닫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고속도로로 이야기하면 갓길운행이다. 나도 시도해 보려는데 뒤에서 한 아주머니가 산에까지
와서 추월이냐고 야단치는 바람에 그만 머쓱해서 다시 본선에 들어섰다.
한국 아줌마의 경고는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사람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산행의 맛이 가신다.
가물어서 먼지는 폐 속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이고 줄은 움직이질 않으니 짜증스럽다.
하산하려고 뒤를 돌아보니 내려가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꽉 들어찬 등산로에 그대로 몸을 맡겨 두고 먼산을 보며 딴 생각을 한다.

드디어 중백운대 봉우리에서 일행을 만났다.
김경일, 김권택, 안녹영, 정병호, 정신모, 정장우, 허영환이 오순도순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이미 나에 대한 욕을 한바탕 한 다음인지 의외로 비난의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다.
박수치는 대원도 있다. 그리고 먹다 남은 김치랑 과일을 나에게 밀어준다.
정신모의 입에서 한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조용하다. 얼른 도시락을 먹어 치운다.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속리산 최고봉), 공주봉, 속리교를 거쳐 다시 소요산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지나고 있다. 소요산 종주산행을 마친 것이다. 마치 말 발굽 모양의 산록의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대망의 종주를 완성한 것이다. 날씨가 가물어 먼지가 폴싹거리고
단풍은 말라 그 아름다움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으나 사람구경하며 산행을 완료한 것이다.
아침 10시 조금 지나 산행을 시작했으니 오늘도 5시간은 족히 걸은 셈이다.

다시 국철을 타고 의정부로 돌아와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붕섭 동문을 만났다.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한다. 며칠 동안 의정부 시내를 돌아다니며 돼지고기 잘하는 집을 찾아 다녔다고 부인이 전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친구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인도 샘이 날 정도였단다.
드디어 그가 시식해본 집 중 제일이라는 담양 돼지 화덕 숯불 갈비 전문집으로 들어섰다.
주인 아줌마의 설명을 빌리면 전라도 암퇘지만을 고집한단다. 참숯에 직접 구워 쫄깃쫄깃하며
옷에 냄새가 베이지 않는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이다. 정말 맛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친구들에게 한붕섭은 연신 술을 권한다.
부인도 오랜만에 즐거워하는 부군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가 끝일 줄 모른다.

술이 거나해진 친구들은 여러 가지 화제를 술상에 올려 놓고 열변을 토한다.
산행 중에는 조용하던 정장우가 화제를 리드하며 좌중을 휘어잡는다. 사투리까지 곁들인
그의 이야기는 구수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정신모가 조용하다.
산행 중인 전반전에는 강한 모습이 산행 후 후반전에 들어서서는 정장우에게 밀린다.
평소에 입심(?)이 좋은 정신모가 정장우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내심 흐뭇해 하며
정장우의 선전에 갈채를 보낸다. 정병호도 밥상머리에서 뒤로 물러 있다. 조용하다.
정장우의 입심에 넋을 잃고 쳐다본다. 가끔 그의 우스개에 파안대소하며 박수로 응답한다.
정신모도 이젠 완전히 듣는 편에 서 있다. 반론을 제기하거나 반박하거나 새로운 화제로 이끌지를 못한다.
정장우가 완전장악이다. 당나귀 세 마리 중에서 정장우가 완전 패권을 쥐는 순간이다.
게임 오버다. 끝났다.

녹십자사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한붕섭 동문은 정년퇴임 후 분당과 용인에서 약국을 개업했다가 6개월 전 의정부로 옮겼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며 가끔 부인이 점검(?)차 불시에 숙소를 찾아온다고 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몸을 움직이며 생활하고파서 아직도 약국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래도 너무 시간과 공간에 억매이는 것 아니냐는 필자의 질문에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고 고백한다.
의정부와 그 부근을 모두 뒤졌는데 동기동창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순간 필자의 눈에 그의 외로움이 보인다. 일년에 분기마다 이렇게 찾아주면 좋겠지만
자기욕심일 것이라며 봄, 가을로 산행 길을 자기 쪽으로 잡아주면 어떻겠느냐고
안녹영 총무에게 간절한 눈길을 보낸다.
친구들이 그에게 전화나 메일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고 거리엔 가로등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일행은 다시 각자 자기들 보금자리로 발길을 돌린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한붕섭동지도
부인과 함께 용인 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친구들과 한껏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아니면 이런 좋은 시간을 어이 가지랴.
더구나 등산으로 호연지기를 기르고 맛있는 음식 나누어 먹으며
당나귀들의 입씨름을 구경하며 깔깔거리고 웃었으니 온 몸에 힘이 솟는다.
친구들과 오랫동안 건강하게 함께 지내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깊어가는 가을에
박인순

  • 안녹영 2008.11.13 11:22
    블써 한달 얼추 되가는그랴 이-, 그 때는 단풍이 꽤 이른듯 보얐는디, 이자는 지나가 쁘리고 있내요. 그라서 그란디, 소요산역에 단풍이 드랐다 지니 속리산역으로 되브럈드라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