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5377 추천 수 74 댓글 0




울산 큰애기

70~80년대에 걸쳐 울산에서 근무했던 여섯 동기들의 부부동반 모임 이름이다.
김해강, 박인순, 안녹영, 이충구, 정병호, 정홍용 이렇게 여섯이다.
부부동반 모임이니 회원은 모두 12명이다.
이런 큰애기들이 큰일을 저질렀다.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
히말라야 다녀온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
개인사정으로 이번 여행에 참석하지 못한 이충구 부부와 제주까지 여행을 같이했으나,
본인 의사에 따라 등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안녹영부인을 제외한 9명이 대장정에 나섰다.
지난 6월9일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해발 1,950미터의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등정한 것이다.

왕복 소요시간: 10시간 30분 (출발 8시30분, 도착 오후 7시)
왕복 산행 거리: 19.2km (상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등정 후 원점 회귀)
표고차이: 1.200미터 (해발 750미터의 상판악 휴게소에서 해발 1,950미터의 한라산 백록담까지)

환갑을 훌쩍 넘긴 초로의 나이에 해발 1,950미터의 백록담을 등정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해발 750미터의 성판악 휴게소를 오전 8시30분 출발하여 하루에 1,200미터의 고도를 올리면서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무려 왕복 19.2km의 산길을 말이다.
예측불허의 날씨 때문에 백록담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도 무색하게 하늘도 우리를 도와 날씨도 쾌청했다.
특히 환갑을 넘긴 부인에서부터 50대 후반의 부인까지 모두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다.
마지막 100여 미터를 남기고 다리 근육 경련을 일으킨 필자를 제외하고는 별 사고 없이 모두 건강하게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필자는 지난 5월13일 59 테니스회원들과 운동 도중 왼쪽 장단지 근육파열 부상을 입어 3주 동안
기브스를 하며 치료를 받고, 기브스를 푼 지 불과 열흘 만에 산행이라 재발을 조심하며 운영했는데
결국 사고가 난 것이다.
부상을 입은 왼쪽 다리에 하중을 줄이려고 오른쪽 다리를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오른쪽 허벅지에 ‘쥐’가 난 것이다.
중간에 쉬면서 허벅지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온 힘을 다해 정상에 도달했다.
대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상에 서니 모두들 걱정하는 눈초리로 안부를 묻는다.
대원들 모두가 믿기지 않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함박 웃음을 웃는다.
감회에 젖어 백록담을 한참이나 내려다 보는 부인도 있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국립공원 관리소의 안내방송은 오후 2시30분부터는 하산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상판악 코스로 상행하여 관음사 코스로 하산한다.
그러나 우리는 관음사 코스가 험난하다는 정보에 따라 다시 상판악 코스로 내려 오기로 했다.
다행히 상행하는 등산객이 없어 산 길은 우리들뿐이다.
그러나 하산 길은 더욱 힘들다. 대부분의 산은 하산시간이 오르는 시간의 70~80%가 소요되는데
상판악 코스는 너무 완만하여 상행과 하행의 스피드에 별 차이가 없다.
더구나 바닥이 화산암으로 된 울퉁불퉁한 돌 길이라, 발 디딜 자리를 골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차라리 급경사의 길이면 훨씬 하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데 경사가 완만하다 보니 상행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상판악 휴게소 주차장을 불과 1.2km 남겨두고는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다리 부상을 염려해 배낭에 챙겨온 헤드랜턴 생각이 난다. 아내는 걱정스러운지 내 옆을 떠나지 않는다. 다리가 천근 만근이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스피드가 나질 않는다.
갑자기 앞이 훤해지면서 주차장 건물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아내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이내 주차장 바닥으로 나서더니 줄달음질 친다. 안녹영 부인이 나와서 하산하는 대원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저녁 7시다.

버스에 앉자마자 무용담으로 시끄럽다. 다들 박수를 치며 성취감에 도취된다.
부인들은 체면도 없이 큰 소리로 각자 자기가 느낀 소감을 버스가 떠나가도록 떠든다.
서로 서로를 칭찬하며 믿기지 않는 듯 소란하다.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주 시내에 들어섰는데도 무용담은 계속된다.
저녁은 제주 명물 흑 돼지구이다.

소속회사들은 각기 달랐지만 조국근대화의 기치아래 가족을 데리고 울산에 내려가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공돌이(?)들이다. 울산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한 달에 한번씩 모여 같이 식사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각자 사정에 따라 서울로 올라오게 됨에 따라 서울에서 1991년 10월부터 회비를 걷고 모임을 발족시켰다. 금년이 햇수로 17년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회칙 중의 하나는 회장은 부인들이 하기로 했으며, 연장자 순으로 2년씩 맡기로 했다. 맛있는 집을 찾아 다니며 모였고, 드디어 2002년에는 김해강 회원의 제청으로 ‘국립공원 순례계획”이 수립되고, 해마다 봄 가을로 우리나라 국립공원 21개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이번 제주 한라산 등정도 그 계획의 일환이다.
2004년에는 회갑기념으로 동유럽 5개국 여행도 함께했다. 가끔 외국여행도 하자는 제안에 따라 2006년에는 중국 황산여행도 했다. 내년에는 스페인, 모로코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현자는 말한다.
어릴 적 인연은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시절은 우리들에게 추억으로 가슴 시리게 하는 시절이다. 소중한 추억인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타향에서 땀 흘리며 같이 지냈던 친구들은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 ‘큰애기 모임’은 그 정을 더해 가고 있다.
금년으로 ‘국립공원 탐방 계획’ 제1기 5개년 계획은 끝이 난다.
제2기 5개년 계획에는 우리나라 명승지를 탐방하는 계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큰애기 부인회원이 이번 백록담 산행을 마치고 아래와 같이 산행후기를 썼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큰애기 모임’이라는 ‘일생의 든든한 동반자’를 얻음이 정말 큰 행운이고, 나 또한 그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한라산 등반에서 얻은 자신감이 앞으로의 삶에 더욱 충실함으로 이어 지리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감합니다.” 라고......

동기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 오랜시간 같이 지내도록 서로 격려합시다.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