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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18:52

막걸리가 우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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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정으로 연 2주 산우회 대원들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집안 조카의 결혼 때문에 정기산행(유명산)을 놓쳤고,
친구가 주말에 강원도에 놀러 가자는 바람에 토요 산행마저 거른 터라,
대원들 얼굴도 그립지만 그 동안 ‘白山學科’ 進度(?)가 궁금하기도 하다.

추석 명절을 앞둔 9월30일 토요일
토요자유산행 대원들이 모이는 그곳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언제나 그렇듯이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모처럼 나타난 나에게 김권택 회장은 악수까지 권한다.
2번을 결석했으나 사실 3주를 못 본 셈이다.

정신모 대장의 출발 신호와 함께
대원들은 싱그러운 가을 아침을 헤치고 산을 오른다.
여기 저기 밤나무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에
대원들 진도가 더디다.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밤톨을 뒤지느라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벌써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 등산을 시작한 터라 산에는 등산객이 우리 밖에 없다.
일찍 도착한 대원들이 자리를 펼치고
뒤늦은 대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함께 모여 간식을 즐기는 시간이다.

여학생들도 도착하여 동그랗게 모여 앉는다.
정병호 대원이 막걸리를 내 놓는다.
검정 비닐 봉지에 싸인 막걸리가 햇빛을 보는 순간
아! 이게 웬일인가?
우유병이 2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요즈음 신제품으로 출시된 플라스틱 병에 담긴 우유다.
뿌연 우유병을 막걸리인줄 알고 사온 것이다.
모두들 아연실색한다.
정병호 대원과 권정현 대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다.
두 대원이 사온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어찌하랴!
잔에 부어 나누어 마신다.
“어이 취한다” 하며 대원들은 막걸리 마시듯
웃음을 참으며 입 속으로 부어 넣는다.

여학생에게도 권한다.
한 여학생이 상황을 미쳐 파악하지 못하고
권하는 잔을 받아 들고는
“어? 막걸리가 우유 같아……” 고 하자
장내는 참았던 웃음이 우유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지난 토요 산행 때, 먹거리를 너무 많이 가져 온다고
줄이자고 했단다.
자리는 넓게 펼쳐 놓았는데 오르는 먹거리는 없다.
‘신모표 삶은 계란’ 과 ‘오이 썬 것’
그리고 ‘바나나 썬 것’이 고작이다.
막걸리가 없는 터라 ‘영환 오빠 표 복분자’는 더욱 빛을 발한다.
한잔씩을 받아 들고는 달게 마신다.
아쉬운 듯 잔을 얼른 돌리지 못한다.

막걸리도 없고 안주는 더 없다.
서둘러 내려가자고 판을 거둔다.
‘복분자’ 알코올 기운으로 내려온다.
12시도 되지 않아 주차장에 도착,
서둘러 갈비 집으로 향한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원조 갈비탕이 우리를 반긴다.

막걸리를 거른 대원들이 소주로 채우려 덤빈다.
다음 토요 산행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그래도 언제나 웃음이 우리를 젊게 한다.
그래도 언제나 친구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래도 언제나 산행이 우리를 배부르게 한다.
그래도 언제나 우리는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천곡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