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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휴강’도 없다.                          [59산우회] 제24회 강좌 – 삼악산(654)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중계방송만 일삼는 기상청 예보조차도 ‘집중 호우’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연일 보도되는 일기예보 구름사진에도 ‘장마전선’이 또렷이 중부지방에 걸쳐있다.
삼척동자도 눈감고 예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두 해 겪는 일도 아니다.
기상청이 슈퍼 컴퓨터를 동원하며 난리법석을 떨지 않아도 뻔히 알 일이다.
눈 감고도 이제 장마철이요, 지역에 따라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는
예측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이미 제3호 태풍 <에위니아>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고,
축축히 젖어있는 대지위로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여기 저기 ‘집중호우’를 뿌리면서 적잖이 피해를 주고 있는 중이다.
상식적으로 ‘호우주의보’ ‘등산금지령’ 등이 당연시되는 계절이다.

그런데도 홈페이지로 문자메시지로 이메일로
춘천행 단체예약이 완료되었다는 전갈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온다.
예약자 명단까지 만천하에 고지된 상황이다.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청량리역에서 7시5분에 떠난다고 늦지 말라고 압박이다.
이젠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그 흔한 ‘휴강’도 없다.

청량리역 6시 40분.
26명의 대원들이 모인다. 여학생이 5명 포함된다.
깜짝 놀랄 일이다. 우천불구다.
새벽잠을 설친 대원들이 눈을 비비며 서로 반긴다.
경춘선 차창으로 누런 북한강 물줄기가 성난 듯 회오리 친다.
강촌역 8시 45분.
비는 멈췄으나 의암댐을 박차고 나온 물줄기와 공기 중의 습기가 혼합되어 뿌옇다.

오늘의 과제 삼악산(654) 등반 시점, 등선폭포 입구에는 우리 밖에 없다.
매표소에는 <출입통제> 팻말이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
매표원의 양해아래 등선폭포 구경만 하고 내려온다.
강촌으로 다시 돌아가 <구곡폭포>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자고 한다.

등선폭포 입구에서 강촌까지 전사(?)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며 세차게 퍼 붓는다.
천둥 번개까지 요란하다. 손에 잡힐 듯 하다.
레인코트도 판초도 소용없다. 우산은 장신구일 뿐이다.
등산화는 이미 물 범벅이고, 팬티까지 젖는다.
경춘가도 왼쪽으로 흐르는 북한강은 금새라도 세상을 삼켜 버릴 듯 요동친다.
흥건히 젖은 도로를 차량들은 사정없이 달리며 물을 뿜어댄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외길로 들어선 기분이다.

약 2km를 50여분 행진한 후 11시에 음식점에 도착한다.
음식점은 대원들이 벗어 놓은 배낭과 우산, 우비로 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종업원이 열심히 닦아대는데도 불감당이다.
<구곡폭포> 관광은 엄두도 나질 않는다.
그러나 김상열, 명정수, 유근원, 윤계섭 대원들은 빗속을 뚫고 나선다.

나머지 대원들은 온몸이 젖었는데도 희희낙락이다.
마치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개선한 장군들처럼 무용담(?)까지 곁들인다.
폭우 속에 천둥 번개를 헤치고 나온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매우 무모한 행군을 한 것이다.
천둥 번개 속을 우산을 쓰고 걸었으니……
어디 그 뿐이랴…… 수 많은 가로등 밑을 흥건히 젖은 등산화를 신고 걸어 왔으니……
장마철이면 으레 침수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감전사고를
우리는 보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런데도 우리 대원들은 무엇이 그리 즐겁고 재미있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이런 위험 속에서도 집을 나서
이렇게 모여 앉아 낄낄거리며 웃게 하는 것일까?
아내의 말처럼 ‘망령’이 든 것일까?

대원들에게 물었다.
“친구가 보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하면 재미있으니까……”
“매주 친구들과 함께하면 스트레스가 싹 가셔서……”
청량리로 돌아오는 열차 속은 우정으로 가득 찼다.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천곡 박인순
  • 能支離(其心身) 2006.07.18 06:01
    멋진 묘사 덕분에 실제로 본듯 겪은 듯 합니다. 겨울 철의 눈, 바람, 변덕스러운 기온이나
    여름 철의 비, 계곡 물들은 비단 아마츄어에게는 말 할 것도 없고 전문 산악인들에게도
    경계 대상 제1호임을 감안해서 약간의 융통성(?)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요?
    여러가지 면에서 즐기는 산행을 위한 모임이지 무슨 탐험대나 결사대는 아니지 않나요?
    충정에서 우러나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건방지다고 생각지는 말아 주세요.
  • 박인순 2006.07.18 13:10
    산행기에 꼬리표(?)가 붙어 있기에 궁금하여 들여다 보았더니......
    우리의 달필 능지리 선생의 글이였구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똑같이 야단맞고
    반성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대의 글을 보니 아내가 '老慾' 이라며 흘기던 눈길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그러나 다행히 산행을 고집하는 대원은 없었으나,
    그 폭우 속을 걸어나온 대원들이 대견하구려
    그대의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우
    감사하오.

    천곡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