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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18:23

무등산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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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사거리                                                    2006년 8월27일 자유산행-청계산

2006년 8월27일 일요일 아침 6시02분.
휴대전화가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린다.
[오늘 비도 많이 오고, 본인 술이 덜 깨서 산행 불가함. 다 같이 취소합시다. 네!!? 녹영]
메시지를 읽고 음미하기도 전에 정신모 대장에게서 전화다.
“우천불구인데 무슨 소리야? 목동, 여의도 몰고 갈 터이니,
분당파는 인순이가 책임지고 몰고 와!.”
알았다고 대답도 하기 전인데 유근원 대원에게서 전화다.
“어떻게 된 거야?”
“우천불구란다……”

산우회 토요 자유산행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여러 가지 있지만 제일 으뜸이 ‘우천불구’다.
‘우천불구’도 200mm 폭우 정도면 ‘고려할 만한 상황’인가?
문자 메시지, 휴대전화 벨 소리가 새벽을 진동한다.
200mm 집중호우에다 돌풍, 천둥, 번개……
기상예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폭언(?)을 다 쏟아놓은 아침이다.

김권택 회장, 권정현, 박인순, 유근원, 정병호, 허영환,
그리고 민병수 부부, 정신모 부부 모두 10명이 과천 청계산 아래 모여 있는데,
8시가 조금 지나 안녹영 부부가 뒤늦게 나타난다.
어제 딸을 결혼시키고 가족들과 뒤풀이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문자 메시지로 보낸 ‘술이 덜 깨서’가 얼굴에 쓰여있다.
총무로서 책임감인지, 어찌 마음이 바뀐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허나 ‘덜 깬 몸’을 이끌고 부인과 함께 나타난 그 열정에 모두 감동한다.
만일 대원들의 위세에 눌려 나왔다면 너무 잔인하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레인코트 속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 무서운 폭우 속에 무슨 열정이 나를 산에 오르게 하는 것인가?
레인코트를 걸치고 손에 우산을 든 대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장선 정 대장이 진로를 바꾼다.
통나무 쉼터에서 대공원 산림욕장으로 향한다.
비도 많이 오고 ‘술이 덜 깬’ 대원을 고려해서인지 쉬운 코스로 갈 모양이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는 대원이 없다.
대공원 산림욕장 팔각정 마루에 자리한다.
산림욕장에는 우리 밖에 없다.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하는 ‘신모표 삶은 계란’, 과일, 등 간식이 나온다.
막걸리도 나온다. ‘영환 오빠 복분자’는 이제 없으면 서운할 정도다.

어제 있었던 민병수 교수의 주례사가 도마에 오른다.
정신모 대장의 주문대로 ‘3분 이내(?)’에 마쳤다고 대단한 실력이라고 칭찬이다.
그 내용도 아주 실질적이고 현실감이 있었다고 극찬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불안했단다.
객석에 앉아 있는 동창생 중에서 “너나 잘해” 라고 할까 바 조마조마했단다.
모두들 배꼽을 쥐고 웃는다. 웃음보가 터졌다. 이제부턴 막을 자가 없다.

김회장이 오토바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요즈음 오토바이 때문에 정신이 없다. 대원들이 재고를 요청한다.
대원들이 회장자리 내 놓고 오토바이 타라고 주문한다.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자고 야단이다.
산우회는 어떤 경우라도 한시도 회장이 공석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들 까르르 웃고 야단이다.
정작 당사자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 모두는 김회장의 오토바이 이야기는
들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의결(?)하고서야 논란은 종결된다.

김회장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좌중을 진정시킨다.
여학생들이 있지만 염치불구 ‘고백’ 하겠단다.
육군보병학교 훈련시절 이야기다.
고된 보병학교 훈련 도중 외박을 나와서
선배와 더불어 술 한잔 걸치고 겪은 에피소드다.
전남 도청 앞에서 머리 긁어가며 오랜 시간, 한 없이 기다린 이야기다.
진지한 그의 태도에 여학생들도 당황하지 않는다.
진실은 이래서 통하는 모양이다.
대원들이 그의 이야기에 제목을 붙여준다.
<무등산 사거리>

일어 설 기색이 없다.
비는 계속 주룩 주룩 내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간혹 우리처럼 ‘우천불구’ 나타나는 등산객이 하나 둘 보인다.

아스팔트 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조용한 아스팔트 위로 한 여학생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들 넷을 낳아 기른 어머니가 있었다.
모두 결혼하여 주말이면 모여서 열심히 골프 치는 형제들을 보며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자 하니 ‘내기 골프’를 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4형제가 모인 자리에서
‘내기 골프’에 대한 병폐를 이야기하며 중지할 것을 주문했다.
막내가 대답했다.
“어머니!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내기 골프에 지면 평생 어머니를 모셔야 한단 말이에요.”

맛깔스런 반찬이 입맛을 돋구는 쌈 밥집
웃통을 벗고 ‘등목’ 하는 대원들의 “허~허~어~” 하고 숨 넘어가는 소리에
저절로 몸이 오싹하니 한기를 느끼며 더위를 잊는다.
하늘은 맑게 갰다.

점심 먹고는 다시 만나자며 헤어지는 것이 불문율이다.
생맥주 한잔 ……
문원동 골목을 죄다 뒤지는데 생맥주 집이 없다. 모범 마을이다.
안 총무가 앞장서며 노인회관 앞 팔각정에 올라가 기다리란다.
대공원 산림욕장 팔각정이 아니라 문원동 체육공원 안의 팔각정이다.
오늘은 신선놀음이다. 팔각정에서만 모여 논다.
슈퍼마켓에서 캔맥주와 안주를 한 주머니 사 들고 안 총무가 달려온다.
혼주로서 사명을 다하려는가?
안 총무의 ‘술이 덜 깬’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팔각정 기둥에 중국집 스티커가 붙어 있다.
허영화 대원이 전화한다.
저녁까지 먹고 가려나? ……
모두들 말린다.
허영환 대원이 대답한다.
“배달이 되는 지 알아 보려고……”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천곡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