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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0 18:00

산꼭대기 홍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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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홍어회 (2006년 2월19일 - 일요일 맑음 - 오대산 정기산행)

유별나게 일찍 추위가 찾아온 이번 겨울, 호남지역으로 큰눈을 내린 하늘은 이제 더 내릴 눈이 없는 것인가? 강원지역에는 아직 그리 큰 눈이 오질 않았다. 잔뜩 벼르던 눈꽃 산행이라 오대산에 눈이 많았으면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매주 토요일 청계산 자유산행을 해온 터이지만 친구들 만날 기쁨에 마음이 설렌다.
봄날 같은 날씨에 한 낮 기온은 영상을 기록할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아침 7시 교대 전철역은 새벽 장터처럼 붐빈다. 정다운 친구들 얼굴이 버스를 가득 채운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권정현과 박무웅은 대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안녹영 총무의 점호, 산행안내와 김권택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지면서
버스는 어느새 여주휴게소로 들어선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는다.
아침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포만감에 얼굴들이 밝다.
정신모 대장이 준비한 유인물을 박인순대원이 읽는다. 천산대학(千山大學 – 59회 홈페이지 참조)이라는 모 대학교수가 쓴 글이다. 은퇴 후 천산대학에 입학에 우리나라에 있는 천 개의 산을 오르는 것이 이 대학의 커리큘럼이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동감한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버스는 어느새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있다.
대원들은 차에서 내려 밝은 태양과 시원한 산바람 영접을 받는다.
두툼한 배낭을 멘 대원들이 하나 둘 짝지어 오른다. 울창한 전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산길을 뚜벅 뚜벅 걸어 오른다. 남학생 24명 여학생 7명 도합 31명의 대 그룹이다.   특히 여학생 뿌리회원들의 참여도가 점점 높아가고 있어 남자대원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편안히 걷던 길이 갑자기 급경사에 부닥친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돌계단을 밟고 오른다.
온몸에 열이 나며 윈드 자켓을 벗어 던지고 싶어진다. 계속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젊은 등산객들이 추월하려 좁은 산길에서 어깨 싸움이 치열하다.
새벽에 이태리 토리노에서 날아든 동계올림픽 숏트랙 남녀 금, 은메달 낭보가 머리를 스친다.
숏트랙에서도 자리싸움은 치열하다. 숨이 턱에 차 쩔쩔매는 중 늙은이(요즘 매스컴에서는 60대 노인이라 부른다)들을 뒤로 하고 젊은이들은 산을 차고 달린다.
나이 듦이 이런 것인가?  그래도 아직 문제 없는데……
사자암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적멸보궁 입구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우리나라에 몇 군데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마침 적멸보궁에서는 불사가 진행 중이어서 찾는 이에게 떡과 과자를 나누어 주고 있다.
모두들 절에 들려 떡을 한입 넣고 내려온다.
이제부터는 아이젠이 필요한 구간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지능선 길을 따라 오르니 비로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산길이 우리를 맞는다. 주변의 전나무 숲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우리 몸을 감싼다. 하얀 눈에 덮인 오르막은 오히려 오르기에 좋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은 오르기에 힘이 든다. 숨을 할딱거리며 쉬고 또 쉬며 오르니 비로봉이다.
해발 1563 미터의 비로봉 정상에 오른 것이다. 사방이 시원하다. 상쾌하다.

오대산은 해발 1563 미터의 산답게 조망이 뛰어나다. 대관령 넘어 동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설악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강원내륙의 고산이며 백두대간의 근간이다.
멀리 남쪽으로 용평 리조트 발왕산 스키 슬로프가 아련히 한눈에 들어온다.

대원들이 모여 점심을 든다. 각자 집에서 마련해온 점심이다. 술이 빠질 수 없다. 허영환대원의 복분자는 물론 이대철대원이 마련한 코냑과 위스키, 등, 이리 저리 돌려가며 정을 나눈다.
홍어회가 나온다. 오대산 비로봉 정상에 홍어회! 뜻밖이다.
정병호대원과 부인인 임명희씨가 마련한 것이다. 여러 접시에 나뉘어져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원들 밥상에 오른다.
다들 놀란다. 홍어회가 오대산 정상까지 배달된 사건에 모두 놀란다.
정병호 대원이 메고 오느라 수고했다. 맛있게 먹으며 한 대원이 정신모 대장의 삶은 계란을 궁금해 한다. 단골메뉴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정대장 부인 임명옥씨는 미소만 짓고 있다.
한 대원이 짓궂게 한 마디 한다. 세금을 내지 않아 영업정지 당했단다. 우스개 소리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비로봉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안 총무의 안내에 따라 전원 상왕봉을 거쳐 북대사길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다.
당초 비로봉에서 오른 길을 다시 하산하는 코스는 현장에서 취소된다.
급경사에 눈과 빙판이 많아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옳은 판단이다.
김권택 회장의 취임공약대로 안전제일 우선주의에 입각한 판단이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이르는 능선은 발목이 깊게 빠지는 눈길을 내려오는 겨울산다운 맛을 제대로 즐기는 코스다.
상왕봉 너머 능선 갈림목에서 오른쪽 지능선 길을 따라 내려가니 북대사 비포장 도로에 이른다.
여름이면 이 지점까지도 승용차로 오를 수 있으나 겨울에는 눈과 얼음 때문에 위험하여 폐쇄한다.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며 대원들은 안도한다.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도 만만치 않다. 곳곳에 눈과 빙판이 도사리고 있어 아이젠을 벗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아이젠을 벗는다. 이젠 괜찮으려니 하고 내려가는데 다시 빙판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아이젠을 다시 착용하기는 귀찮다. 오랜 시간 걷다 보니 이젠 빨리 쉬고 싶다.
그러나 길의 끝은 보이질 않는다. 저 아래로 보이는 길이 끝인가 싶어 달려가 보면 산모퉁이를 돌아 또 다시 다른 길이 펼쳐진다.

상원사 주차장에는 대원들이 모여 무사귀환을 자축하고 있다. 총 12km의 6시간 30분 산행이다. 그것도 눈길과 빙판을 말이다. 보폭을 60 센티미터로 계산하면 20,000보 이상을 걸은 것이다.
정 대장이 자기 기억으로는 59산우회 기록으로는 최장 산행인 것 같다고 한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월정사를 빠져 나와 유명한 산채정식 집으로 들어간다. 모두 시장기를 느낀다. 미리 차려 논 밥상에 소주와 맥주 그리고 동동주를 곁들여 산채의 진미를 맛본다. 안 총무가 인터넷으로 찾아낸 맛있는 집이다. 이름 모를 산채들로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여사장이 특별 서비스라며 엄나무(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있는 고산식물) 나물을 직접 들고 상마다 돌며 생색을 낸다.
맛있다. 소주는 끝없이 밥상을 공격한다.
한 두 대원들이 벽에 등을 대기 시작하면서 성찬은 끝난다. 저녁 7시……  해가 길어졌다.

59산우회에는 유독 정씨 성을 가진 대원이 많다. 정신모 대장을 비롯, 정승철, 정병호, 정학철 대원이다.
이름하여 정 브라더스다. 공통점은 산행할 때 꼭 부인을 대동한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 정학철 대원이다. 한 대원이 질문한다. 다음부터 부인을 모시고 나올 수 없느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한다. “쿠산 티페” 그리곤 입을 다문다. 소크라테스 부인의 이름이다. 질문한 대원이 원어로 써 달라며 조른다. 보다 못한 허영환 대원이 써 준다. 써준 글이 더욱 가관이다. ΣαβΩ. 한바탕 웃고는 장을 내린다.

정 브라더스 부인들뿐만 아니라 59산우회 여학생들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민병철 부인 신인숙씨는 걸쭉한 입담으로 대원들을 놀라게 한다. 하루는 토요 자유산행 때 민병수 대원이 늦장을 부리며 산행에 빠지려 하자 “맞고 갈래 가서 맞을래” 하면서 남편을 독려하여 나왔다고 해서 우리 모두를 웃겼다.
우재형 부인인 윤성원씨는 초롱 초롱한 눈으로 대원들 사이를 오가며 재담으로 대원들을 즐겁게 한다.
김해강 부인인 이용숙씨는 남달리 봉사정신이 강하다.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앞장선다.
안 총무 부인 육순옥씨는 묵묵히 남편 총무 일을 거든다.
정승철 대원 부인 전선자씨는 암벽타기 등 산행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정병호 대원 부인 임명희씨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면서 산행에는 별식을 준비해오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정신모 대장 부인 임명옥씨는 조용히 남편을 내조한다. 토요 자유산행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열정을 보인다.

김해강 대원이 버스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술 서비스를 하는 가운데 버스는 어느덧 도심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6시간30분 동안의 산행을 한 대원들은 피로도 잊은 채 김 대원이 권하는 술을 잘도 받아 마신다. 이대철 대원이 가져온 맑은 술이다. 이름은 모른다. 이대철 대원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입에 짝붙는 맛이 별미다. 정작 이 대원은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정성스레 산행 때마다 가지고 온다. 대원들은 즐겁게 받아 마시며 밝게 웃는다.
취한 대원도 없고 더구나 주정하는 대원은 더 더욱 없다.
강제로 마시라고 강요하는 대원도 없고 더 달라고 졸라도 더 주는 대원도 없다.
술로 인해 분위기 망치는 일은 더욱 없다. 그래서 즐겁게 받아 마신다.

네온사인이 더욱 밝아지면서 버스는 멎는다. 헤어질 시간이다.
다음 만날 때까지 친구여 안녕……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천곡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