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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우리나라 첫 ‘준 대성전’, 목포 산정동성당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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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동성당-01>

 

1866년의 병인박해가 벌어지자 박해가 휩쓴 지역의 교우들은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전라남도 지역으로 피신해 교우촌을 이루었다.

1872년에는 나주의 신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됨으로써 순교하였으나,

복음은 꾸준히 전파되었고 교우촌이 점차로 불어났다.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우리 이름 유달영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 순창 담양 등에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뤼시앵 리우빌(Lucien Nicolas Anatole Liouville 1855~1893)

<약력에는 1898년 선종으로 기록되었으나, 본문에는 1893년 복막염으로 사망,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고 서술됨. Google 등 모든 문서에도 1893년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1880년 한국에 와 황해도에서 전교 활동을 시작.

다음 해 전라도 지역에 파견돼 약 6년간 활동,

50개 마을에 흩어져 있는 3천여 명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고,

20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887년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 초대 교장에 임명되었다.

<두산백과>

 

1896년까지도 전라도 지역은 전주본당, 되재본당 수류본당 등

북부 지역에만 본당이 있었으나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전라도 지역을 순방하면서 나바위본당과 목포본당의 신설을 결정했다.

목포 본당 설립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1898년에 개항 예정인 목포 지역의 발전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데예 신부 1817~1910-01.jpg

            <데예 신부>

 

1897년 5월 8일 데예(Deshayes 曹有道)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목포는 100호도 안 되는 마을이었고 신자는 한 명도 없었다.

데예 신부는 우선 아천리공소(전남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靈巖郡 金井面 鴉川里)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목포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로 하고,

수류본당(水流 현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完州郡 九耳面 安德里) 주임으로서

전라도 남부 공소를 담당하던 라크루 신부로부터

순창, 정읍, 장성 지역의 공소들을 인수하여 순방을 시작했다.

이듬해 봄 판공을 끝낼 때까지 데예 신부가 순방한 공소는

위 세 곳 이외에도 담양, 함평, 태인, 무안 등지의 26개소였다.

 

1897년 9월부터 아천리 신자들을 목포로 보내

쌍교(雙橋 현 남교동과 북교동 사이)의 토지와 가옥을 사들였고

이듬해 목포항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현 목포 산정동)을 매입,

그 안에 있는 가옥을 수리하여 1898년 7월 2일 거처를 옮겼다.

 

목포 성당 건립

1897년의 목포 본당-01.jpg

                                              <목포 성당 – 1897년>

 

목포에 진출한 데예 신부는 즉시 제물포(현 인천 답동) 성당을 모방하여

성당을 설계, 8월부터 산정동 부지에 건축을 시작했고 1899년 초에

처음 설계대로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연와제(煉瓦) 성당을 완공했다.

당시 목포 신자 수는 22개 공소에 1,238명이었다.

<성지 목록>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한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는

1913년 8월 4일, 데예 신부가 매입했던 산정동 97번지(현 성 골롬반 병원 구역)에

새 성당 건축의 정초식을 하고, 언덕 위에 높이 5.5m의 대형 십자가와

성 파트리치오를 주보로 한 종의 축성식도 거행했다.

성당은 그 해 완공돼 12월 25일 ‘성가광영’(聖架光榮)을 주보로

봉헌식을 했다.

[성가광영 :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옛 용어. 9월 14일.

  이 축일은 세 가지 역사적 사실로 인해 결정됐다.

  첫 번째는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 엘레니 모후가

  거룩한 나무 십자가를 발견한 기적. 골고타에서 주님의 십자가가 발견되었을 때,

  성 엘레니는 눈물로 경배하고 예루살렘의 마카리오스 주교에게 전했다.

 

  두 번째는 성 엘레니 모후가 예수님의 무덤 위에 부활 교회를 건립한 것.

  교회는 335년에 완공되어, 다음날인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의식이 거행됐다.

 

   세 번째는 ; 페르시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침공, 성 십자가를 14년 동안 탈취했는데

   비잔틴 제국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이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628년 9월 14일,

   황제는 신을 벗고 곤룡포가 아닌 검소한 옷으로 성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예루살렘의 부활 교회로 걸어가 자카리아 총대주교에게 전달하여,

   성당 중앙에 높이 세워졌다.

   그 이후로 동 서방의 모든 교회는 공식적으로 십자가 현양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 가톨릭 자료실 등.]

 

 

가톨릭목포 성지 조성

산정동성당-02-01.jpg      상정동성당-03-01.jpg

                 <산정동성당-02>                                           <산정동성당-03>

 

2016년 광주대교구는 목포시와 공동으로, 한국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도입지인

산정동 성당과 성 골롬반 병원으로도 쓰였던 구 교구청을 포괄하는

‘가톨릭목포 성지’를 조성키로 하여,

2016년 4월, 1단계 사업의 핵심인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건립을 시작했다.

또,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2016년 12월 원형 복원 및 보수 정비 공사를 마무리한

옛 교구청 건물을 가톨릭 목포성지 역사박물관으로 재단장,

2017년 8월 28일 축복식을 거행했다.

 

성지는 산정동 언덕 위에 웅장한 건물인 성 미카엘 대성당(700석 규모),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역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약 2만 9000㎡에 달하는 목포의 새로운 명소를 이루었다.

전남 목포시 산정2동 74.

 

순교자 기념성당 준 대성전 봉헌

2021년 11월 20일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 순교자 기념성당 준 대성전 봉헌식이

광주대교구 주관으로 거행됐다.

봉헌식에 앞서, 교황청 경신성사성(敬信聖事省)은 2021년 5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부여한 고유 권한에 따라

산정동성당에 준 대성전(Minor Basilica)의 칭호와 품격을 부여했다.

 

준 대성전은 역사적, 예술적,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성이 인정되는 성당에 붙여진

명예로운 칭호다.

 

 

세 분 사제의 순교 기념비

순교기념비-01-01.jpg               안 파트리치오 몬시뇰-jpg-0011.jpg

                           <순교자 기념비>                               <파트리치오 브레난 몬시뇰>

 

성당 앞 화단에는 6.25 전쟁 때 순교한 교구장 브레난(1901~1950) 몬시뇰과

본당 주임 쿠삭(1910~1950), 보좌 오브라이언(1918~1950) 신부를 기리는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쟁이 나자, 7월 16일 군산에 있던 미 대사관의 맥도넬 영사가 목포 주교관으로

브레난(Patrick Brennan 파트리치오 브레난 安) 몬시뇰을 찾아와,

피난을 떠나라는 미 대사관의 방침을 전하면서,

미군이 대전과 목포 사이의 서쪽 지방을 방어할 의향이 없음을 알렸다.

하지만, 브레난 교구장과, 아일랜드 출신인 쿠삭(Thomas Cusack 高) 신부,

보좌였던 오브라이언(John Patric O‘Brien 吳 요한)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남기로 했다.

 

세분 성직자는 7월 말경에 체포돼 대전으로 이송되어

대전시 목동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입구 왼편 마루방에 감금되었다.

이후 9월 26일부터 28일 새벽까지 총성이 계속 들리더니

인민군들은 북으로 쫓겨 갔는데 세 분이 있던 방에서는 인기척이 없고

다만 파트리치오 브레난 몬시뇰의 여권과 명함, 성무일도가 발견되었다.

토마스 쿠삭 신부-01.jpg                               존 오브라이언 신부-01.jpg

                <쿠삭 신부>                                       <오브라이언 신부>

 

1944년 대전 중구 목동에 있던 대전본당 신부로 부임한 이래

1968년 서울로 이동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대전에서 주임신부로 봉직했던

오기선(吳基先 요셉 1907. 11. 5.~1990. 7. 30.) 신부는

세 분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뜨락에

길이 10m, 높이 170cm의 구덩이를 파헤쳐 사살된 시체들을 점검했고,

뒤뜰의 37척 우물 속과 수도원 뒤 구덩이도 파 보았으나

인민군들은 포로들의 전신에 콜타르를 칠하였고,

오랜 시일이 지나 시신이 부패하여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 신부는 대전 형무소에도 가 보았으나,

1천 명씩 넣어 죽인 우물 8개 속에서도 성직자의 시신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 신부는 1981년 8월 13일, 그들이 사살되었을 것이라고 고증했다.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 2021.09.30. 강주석 베드로 신부>

 

[몬시뇰 Monsignor : 몬시뇰은 주교와 신부 사이의 직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08~1378년 교황이 프랑스 아비뇽에 임시로 머물 때,

  교황의 보좌관을 몬시뇰이라 하였다. 그 후 교황청의 고급 관리로서

  추기경이나 주교가 아닌 일반 사제에게 적용되는 칭호가 되었다.

  오늘날은 전통 있는 본당 신부나 오랜 성직 생활로 교회에 공이 큰

  원로 성직자에게 교황청에서 주는 명예의 칭호가 되었다.

  교회법상 권한은 없으나, 공식 의식을 행할 때는

  수단 위에 빨간 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달 수 있다.

   - 가톨릭 용어 사전>

 

 

한국 레지오 마리애 발상지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01.jpg       산정동성당,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01.jpg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레지오 기념관>

 

산정동 본당에서 광주 교구장 서리를 수행하고 있던 해롤드 헨리 주교는

(Harold W. Henry 玄 1909~1976) 1953년 한국에 레지오를 도입했다.

전쟁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성모 신심과 덕행을

정신적 지주로 삼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당시의 주임은 14대 토마스 모란 신부(Thomas Moran 安 1920~1976)였다.

해롤드 헨리 주교-01.jpg           한국 레지오 마리애 첫 주회합과 모란 신부-01.jpg

          <해롤드 헨리 주교>                              <평화의 모후 첫 주회합과 모란 신부>

 

5월 31일 열린 첫 모임은 산정동본당의 ’치명자의 모후’(남성) ‘평화의 모후’(여성)

그리고 1951년 분할된 경동본당(京洞)의 ‘죄인의 의탁’(혼성) 쁘레시디움이었다.

 

1994년 산정동본당 100주년 기념 사업회가 결성되어,

1996년 11월 15일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기공식을 가졌으며,

2017년 9월 30일에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프랭크 더프-01.jpg                     주회합 제단-01.jpg

              <프랭크 더프>                                          <주회합 제단>

 

[레지오 마리애 Legio Mariae : 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軍團)을 뜻한다.

 평신도 사도직 활동 단체로,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모시고

 그분의 강력한 지휘 아래 군단(Legio)을 조직하여,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고

 사회봉사와 가톨릭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신심 단체이다.

 아일랜드의 프랭크 더프(1889~1980)가 창설하여

 1921년 9월 7일 더블린에서 15명 회원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 1천만 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데

 이는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 가장 큰 조직이다.

 <위키백과>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현재 51만 명의 행동 단원을 가진

한국 최대 규모의 신심 단체가 되었다.

 

쁘레시디움 Praesidium :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파견대를 의미.

레지오의 기본 단위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2만8천여 개의 쁘레시디움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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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