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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기적이 거듭된 성모 순례지 - 감곡 매괴 성모 성당

감곡성당-01.JPG

                                                                  <감곡성당 - 01>

 

감곡 매괴 성모 성당(충북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왕장리 357-2)은

수원교구 남양 성모 성지(1991. 10. 1.)에 이은 두 번째 성모 순례지로서

2006년 10월 7일 본당 설정 110주년을 맞아 승인됐다.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성모 발현이 있었고,

성모 공경을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들이 있는 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교회의 역사가 짧고 성모 발현도 없었으므로

성모 공경을 위한 순례지가 있다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교황청이 인준한 성모 순례지가 34곳이나 된다.

그 이유는 로마 성모대성당(Basilica Papale Santa Maria Maggiore)과

특별한 영적 유대를 맺고 있는 성당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성당, 성지를 순례하면 성모대성당 순례와 동일한 영적 은총을 받는다.

 

로마 성모대성당-01.jpg

                              <로마 성모대성당>

 

성모대성당은 로마 4개 대성당 중 하나로 유럽 최초로 성모께 봉헌된 곳인데,

제36대 리베리오 교황의 꿈에 나타난 성모님의 지시로 세워졌다.

358년 로마 귀족 요한 부부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다음날인 8월 5일 로마에 눈이 내렸다.

요한 부부는 리베리오 교황을 찾아갔고, 교황 역시 같은 꿈을 꿨다며

무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쌓인 에스퀼리노 언덕에 성당 건립을 지시했다.

이 전설로, 리베리오 대성당 또는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가톨릭신문 2022. 5. 15.>

 

임 가밀로 부이용 신부 - 01.jpg                       임 가밀로 부이용 신부 - 02.JPG

                                <가밀로 신부 - 01>                                                              <가밀로 신부 - 02>

 

감곡성당의 성모 신심은 초대 주임인 임 가밀로 신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임 가밀로 부이용 신부(R. Camillus Bouillon. 우리 이름 임가미 任加彌)는

1894년 여주 부엉골(부흥골)에 부임하여 무려 51년간 감곡성당에서 사목한 분이다.

 

성모 발현지 루르드에서 불과 20㎞ 밖에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 비에유 아되르에서 태어난 부이용 신부(1869. 12. 19. ~ 1947. 10. 25.)는

어려서 부터 어머니와 함께 루르드를 자주 방문하며 독실한 성모신심을 키웠다.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고, 1893년 사제 서품을 받은 다음 해에 조선에 와서

부엉골본당(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驪州郡 康川面 부평1리)에 부임했다.

‘부엉이와 범만 산다.’고 해서 부엉골, 또는 가톨릭의 ‘부흥’을 위한 부흥골로도 불리는

산골 오지로, 1885년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우촌이 조성된 지역이다.

대성전에 모셔진 소화 테레사 성녀.JPG

                 <대성전에 모셔진 소화 테레사 성녀>

 

출발 전, 오지로 가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가르멜 봉쇄수녀원으로 가서 기도했는데,

그 때 리지외의 테레사 수녀(小花 소화 테레사 1873 ~ 1897)와 만나

영적 남매 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두 분의 관계는 꾸준히 이어져, 그녀가 24세에 선종하고 성녀로 시성된 후,

소화 테레사의 성상을 감곡 성당 내에 모시기도 했다.

 

먼 이국땅으로 가는 아들을 위해, 부이용 신부의 어머니는

‘기적의 패’를 한 보따리 안겨주며 ‘요긴하게 쓸 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부는 루르드의 성모상과 기적의 패들을 들고 조선으로 왔다.

 

 

기적의 패

기적의패.jpg

                           <기적의 패>

 

<1830년 파리 까리따스 수녀원, 성모 마리아가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나타나

   "이와 같은 패를 만들어라. 그것을 착용하면 누구나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특히 목에 걸고 다니면 좋다."라며 보여주신 패.>

 

 

장호원 지역은 본래 부엉골본당 관할 지역에 들어 있었다.

부엉골의 예수성심신학교가 1887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얼마 동안 남아 있었던 이 본당의 설립 때 이름은 장호원본당(長湖院)이다.

 

성당이 사목지의 북쪽 끝에 치우쳐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이전 계획을 세운 부이용 신부에게, 장호원 산 밑의 대궐 같은 집이 눈에 띄었다.

신부는 이곳이 성당 세우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였으나,

문제는 그 집이 이조와 예조 판서를 지낸 민응식(閔應植)의 소유라는 것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한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명성황후의 손자뻘인 민응식은 이후 승승장구하여 수구파의 거두가 되어 있었다.

<나무위키>

민응식은 매매 가격으로 상상도 못 할 거액을 불렀고 돈이 없는 부이용 신부는,

"성모님, 저 집과 산을 성당 소유로 주신다면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이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에 몰래 민응식의 집 주변에 기적의 패를 묻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나무위키>

 

1895년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되면서

이 집을 의병들이 사용하게 되자, 일본군은 이 저택을 불태워 버렸다.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변고가 일어나자 민응식은 땅을 팔기로 했고.

부이용 신부는 1896년 5월 성모 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묵주기도 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 다음해 9월에 이를 완공했다.

한옥과 양옥의 절충식으로 총 80평에 달하는 건물이었다.

 

 

부이용 신부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적의 패를 사용했다.

그 중 하나가 성당 뒤 매산(梅山) 중턱의 신사(神社) 건립 사건이다.

1943년 일본인들이 이곳에 신사를 지으려 하자 부이용 신부는

매산에 기적의 패를 묻어 두고 성모님께

“공사를 중단하게 해 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일인들이 공사를 진행하려 하면 여러 가지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큰 짐승이 출현하는 바람에 번번이 공사가 중단됐으며,

결국 2년 뒤 해방이 되자 공사는 완전히 끝장이 났다.

1955년 8월 15일 매산 중턱은 성모 광장으로 봉헌됐고,

감곡 성당이 1914년부터 해마다 거행해 온 성체 거동 행사 장소가 되었다.

<나무위키>

성모 광장.JPG          감곡성당 성체거동-네이버 블로그.jpg

                                        <성모 광장>                                 <감곡성당 성체 거동 - 매년 10월 첫 목요일

                                                                                              성체현양대회 때 성체 거동을 거행한다.>

 

성체 거동 행사(聖體擧動. Eucharistic Congress)

 

성체에 대한 신심 앙양을 위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성대한 모임.

행사는 특정 주제로 개최되며 성체 관련 제반 문제에 관한

강연과 세미나 등이 함께 이루어진다.

‘성체대회’ 라는 명칭으로 1874년 프랑스에서 처음 대회가 열렸고,

1881년에는 첫 번째 국제 성체대회가 프랑스에서 조직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체 거동 행사’라고도 불린다.

<가톨릭대사전>

 

 

임 가밀로 부이용 신부는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핍박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고,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도 세 차례나 수감되었다.

다만 프랑스와 일본이 동맹이었기에 그 이상의 처분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프랑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임 가밀로 신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죽게 해 달라."는 가밀로 신부의 청이 받아져

신부는 일본 경찰들과 함께 감곡성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가 끝나고, 이별을 앞둔 신자들이 엉엉 울고 있을 때

돌연 성당 문이 벌컥 열리며 동네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신부님, 사셨습니다! 조선이 해방되었어요!’

이날이 바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이자 성모승천대축일이었던 것이다.

제대와 중앙 위의 성모상.jpg                대성전-총 맞은 성모상.JPG

                          <제대 중앙의 성모상 >                                                     <총 맞은 성모 마리아>

 

6 25 전쟁 중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남침한 북한군은 언덕 위의 좋은 위치에 있는 감곡성당을 진지로 삼았다.

이 때 그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성당 안에서 도깨비불 같은 것이 날아다니거나,

잘 서있던 성수대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쓰러지는 등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두려움에 떨던 북한군은, 제대 위에 위치한 성모상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 성모상은 루르드에서 제작되어 임 가밀로 신부가 설치한 것이다.

그들은 성가대석에 올라가 성모상을 향해 총을 쏘았는데,

석고로 되었으므로 총알 한 방 맞으면 산산조각 나야 할 성모상의 가슴에

총알구멍이 났지만 깨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북한군은 6발을 더 쏘았고 여섯 개의 구멍만 더 났을 뿐이었다.

열 받은 북한군이 사다리를 놓고 망치로 부수러 올라가자

성모상이 눈물을 흘리며 엄청나게 환한 빛을 비추는 바람에 놀라 떨어졌다고 한다.

질려버린 북한군들은 “성당 안에 ‘우는 여자’가 있어서 무서워 못 살겠다."며

성당을 뛰쳐나갔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감곡 사람들을 납북하려 하자,

동네 사람들은 죄다 성당으로 피신했다.

‘우는 여자’에 겁을 먹은 북한군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후퇴했다고 한다.

이후 이 성모상은 ‘수난 받은 성모상’, ‘성모 칠고를 상징하는 성모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성모 칠고(聖母 七苦)

천주교 교리에서 전해져 오는, 성모 마리아의 7가지 수난을 뜻한다.

1.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당시 사제 시메온으로부터 받은 수난 예언.

2. 헤로데의 박해를 피하기 위한 이집트로의 도피.

3. 어린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찾음.

4.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만남. 5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지켜봄.

6. 예수의 죽음. 7. 예수를 무덤에 묻음.

부이용 신부 가묘 (1).JPG       가밀로 신부 유택 - 01.JPG

                           <가밀로 신부 가묘>                                                      <대성전의 가밀로 신부 유택>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인사로

감곡성당에 부임한 임 가밀로 부이용 신부는, 51년이 지난

1947년 10월 25일, "성모님, 저를 구하소서!"라는 유언과 함께 선종했다.

유해는 성당 인근 야외에 모셨다가, 83년에 성당 내 벽 제대 아래로 옮겼다.

 

지금의 고딕식 성당은 1930년에, 화강석의 2층 건물 사제관은 1934년에 건립됐다.

혜화동성당의 초대신부였고,

원주교구 용소막본당을 신축했고(본 연재 45. 용소막성당. 2020. 7. 25.)

인천 답동(沓洞) 주교좌 성당 증축을 설계했던

시잘레(Chizallet, Pierre 1882~1970. 우리 이름 지사원 池士元) 신부가

설계한 작품으로 명동성당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시잘레 신부.jpg             성모 동굴 - 01.JPG

              <시잘레 신부>                                                                  <성모 동굴>

 

2018년 10월 루르드의 것을 본뜬 성모 동굴이 완성, 축성되었다.

모양과 크기를 원형과 똑같이 만들었다.

   

감곡면(甘谷面)은 충주군 지역의 가미실의 이름을 딴 감미곡면(甘味谷面)과

거곡면(居谷面)에서 두 글자를 따 와 붙인 지명이다.

 

매괴(玫瑰 - 붉은 옥)

‘한불자전’(韓佛字典)에 따르면 장미, 염주(念珠)를 의미하는 옛말로서

흔히 아름다운 구슬을 지칭한다.

천주교의 용어로는 ‘로사리오’ 즉 묵주(默珠)의 뜻으로 사용해 온 말이다.

<천주교 용어사전>

사제관.jpg            감곡성당-02-01.jpg

                     <사제괸>                                                                      <감곡성당 -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