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3265 추천 수 0 댓글 0



익숙한 일을 할 때 ‘첫 마음’을 떠올려야.


2015. 1. 13.


 

무슨 일에나 익숙해지면 처리가 쉬워집니다.

특히 단순작업은 숙련될수록 능률이 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익숙함에는 반드시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늘 하던 일이니까 의례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자전거나 스키를 처음 배울 때는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조심조심하고, 넘어질 것에 미리 대비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타면서 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는 순간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러한 타성(惰性)은 너무 많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요한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르코 2,)

 


혼인잔치의 비유는 세례자 요한이 한 말을

요한의 제자들에게 거꾸로 인용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빗대어 말하기를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고 했습니다. (요한 3,29)


요한이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비유했으므로

신랑과 함께 있는 자신의 제자들은 단식을 안 한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습관적으로 단식을 한다는 점입니다.

왜 단식을 해야만 하는지 그 본질은 잊어버리고

그냥 때가 되면 단식하는 형식적 행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저는 레지오에서 하루 5단씩 묵주기도를 바치라니까

열심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정신을 차려 자신을 들여다보면

기도의 참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중얼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들도 외우지 못했을 때는

글귀를 생각해내며 차분하게 했었는데,

기도문을 다 외운 뒤에는 아주 편하게,

심지어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기도드리는 망발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익숙한 일일수록 ‘처음 할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려

정신을 모아 진행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