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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평화를 빕니다.’

2015. 4. 28.

 

오래 전, 그러니까 한 50년쯤 이전에는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했답니다.

먹고살기가 어려우니 밥 먹는 일이 제일 큰 문제라서

그런 인사가 생겼다는 해석도 있고,

건강, 경제, 집안의 화목을 아우르는 좋은 인사라는 평도 있습니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등도 비슷한 인사입니다.

 

 

우리 가톨릭은 미사 때 ‘평화를 빕니다.’ 라고 인사합니다.

아랍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인 ‘쌀람 알리쿰’도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이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유다인들의 전통적 인사를 합니다.

 

19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 20,19)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친근한 언어를 쓰신 겁니다.

그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찬에서 ‘평화’를 주십니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예수님의 평화는 그냥 마음이 편안한 상태의 ‘세상적 평화’가 아닙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일치할 때 느끼는 참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시고, 남기셨습니다.

 

‘남긴다’는 말은, 제자들 또한 복음 말씀을 전하여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주라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쉽게 얻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실행하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지엄한 명령이 함께 하는 평화입니다.

 

 

저는 미사에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마다 너무 형식적이 아닌가,

어색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진정성 없는 느낌에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여러 번 미사를 드렸는데,

그 때마다 그들이 주는  ‘평화의 인사’에서 따뜻한 형제애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도 ‘평화의 인사’시간을 좀 더 늘리고,

악수를 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우선 우리 모두가 하라니까 하는 형식적 태도를 벗어나,

마음속으로부터의 평화를 서로 빌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