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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에 귀 기울임이 소통의 시작

2014. 9. 16.

 

당(唐) 나라 때 시선(詩仙) 이백 (李白, 자는 태백. 701 ~ 762)의 친지 왕십이(王十二)가

‘쓸쓸한 밤에 홀로 술 마시며 수심에 잠긴다.(寒夜獨酌有懷)’고 글을 부치자

이태백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지은 시를 들어도 고개를 저으며 들으려 하지 않음이

마치 봄바람이 말의 귀에 부는 것과 같다.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고

답합니다.

여기서 마이동풍(馬耳東風)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 속담의 ‘쇠귀에 경 읽기’와 같은 뜻입니다.

<두산백과>

 

예수님 시대 사람들도 대부분 예수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쇠귀에 경 읽기’, ‘마이동풍’ 격이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루카 7,31-35)

 

 

어린이들이 잔치 흉내를 내며 피리를 붑니다.

그러나 듣는 아이들은 춤추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례식 흉내를 내며 곡을 합니다.

그래도 보는 아이들은 울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연기가 서툴러서 공감을 못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관객인 아이들은 처음부터 호응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그 세대 사람들은 ‘마귀가 들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복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고 폄하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관습과 율법으로 굳어져 있어서

요한이나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요한과 예수님 말씀이

전혀 근거 없는 황당한 말이었을 뿐입니다.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먹으면 먹는 대로 그 행동을 비웃으며

본질인 말씀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어떠한 중상모략을 하더라도 복음 말씀이 옳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주신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큰 화두 중 하나가 ‘소통’입니다.

소통이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입니다.

남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리는 말도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의미나 배경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