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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의 참뜻은 ‘조건’에 있다.

2013. 6. 10.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어 설교하신 ‘산상수훈’(山上垂訓 마태 5:1-12)에 나오는

‘행복선언’으로, 다가올 여덟 가지 참행복(眞福八端)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각 문장의 왼편에는 ‘조건’이 있고, 오른편에는 그로 인한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5번’에서 막히곤 했습니다.

왜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해석을 찾아보니 여러 다른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사악에게 하느님께서는 넓은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사악이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류에 속하는 개와 이리 중, 포악한 이리는 거의 멸종이 되고

 온순해진 개는 번창한다. 온유한 자가 결국은 세계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땅이란 가나안을 말하며, 유대인에게 가나안 땅이란

 커다란 축복을 뜻한다. 그러므로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토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Albert C. Barnes>

 

‘이 땅은 지금의 땅이 불타 없어진 뒤에 생기는 새로운 땅을 의미한다.’

<John Gill>

 

 

해석에 조금씩 다른 차이가 있지만, 잘 알려진 성경 전문가들은,

‘땅이란 가나안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구약에 여러 번 나오며,

 예수님이 그 구절들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땅’을 뜻한다고 풀이하면,

‘3번’에서 이미 ‘하늘나라’가 주어졌으므로, 중복이 되어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커다란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다른 견해들도 다 근거가 있으리라고도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 구절로 팔복(八福)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시인 자신도 ‘슬퍼하는 자’요, 당시의 우리 민족도 ‘슬퍼하는 자’이니,

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으라는 바람을

팔복 대신 이렇게 여덟 번 반복함으로써 강조한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마지막 련(聯)에서는

비관, 역설, 허무의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풀이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정확한 해석’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방점(傍點)이 ‘조건’에 있기 때문이지요.

‘결과’는 하느님의 몫이므로 이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영적으로 가난하게, 온유하고 의롭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깨끗한 마음으로 평화를 지향하며 살도록

노력하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선언’의 참뜻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