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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90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유럽이 세계 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에 빠져 있던 1917년 5월 13일 토요일 정오,

포르투갈 산타렝 주 빌라노바데오렘의 빈촌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에서

세 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을 때,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이 내려치면서

앞에 있는 작은 떡갈나무 위에 찬란한 모습의 한 부인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그 경계 부분은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며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빛으로 가득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생각에 잠긴 듯 한 슬픔도 배어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그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고 목격자 루치아는 설명했다.

 

 

다섯 달 뒤, 10월 13일에 다시 나타나 스스로를 ‘로사리오의 모후’ 라고 밝힘으로서

이 부인은 성모 마리아로 확인됐으며, 세 목동은 루치아 도스 산토스(Lucia dos Santos

1907. 3. 22. - 2005. 2. 13.)와 그녀의 사촌 남매 프란치스코 마르토(Francisco Marto 1908~1919),

히야친타 마르토(Jacinta Marto 1910~1920)이다.

 

 

 

파티마의 성모-03.jpg

 <파티마의 성모상 >

 

 

첫 발현 때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와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일러주었다.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7월 13일 성모 마리아는, 발현을 모든 사람이 믿도록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 보이겠노라고 약속했다.

 

 

환시와 기적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파티마에 몰려들었다.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한 지방 행정관은 8월 13일 아이들을 교도소에 감금했다.

 

풀려난 목동들은 8월 19일 발리뇨스의 목초지에서 성모를 다시 만났다.

9월 13일 마리아는 전쟁이 끝나도록 묵주 기도를 바치라고 지시했다.

 

 

발현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었던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되고

신문기자 포함, 약 7만명이 코바 다 이리아로 몰려들었다.

 

10월 13일이 되자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고 곧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다.

오후 1시경 먹구름들이 갑자기 물러가고 비도 그쳤다.

그리고 태양이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여러 성인이 나타났고, 태양은 불 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광선들을 발산하며 지상을 물들였다.

잠시 후,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전진하면서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친 정부, 반 교회 성향인

‘오 세쿨로’ (O Século)의 칼럼니스트 알베리노 드 알메이다는

“엄청난 인파가 보는 앞에서 태양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난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이 춤을 추었던

것이다.”라고 자기가 본 것을 보도했다.

 

 

리스본의 일간지 ‘오 디아’ (O Dia)는 1917년 10월 17일자에서 “태양에 투명한 베일을 씌운 것처럼

아무 어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우중충한 회색으로 빛나는 은반 모양이 되었고

구름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며 주춤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커다란 회전바퀴 축에서 퍼져 나가며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바뀌었다.

노란 빛은 떡갈나무와 바위들, 언덕까지도 한없이 물들였다.

모든 사람은 압도되어 흐느꼈으며 모자를 벗고 기도했다.

몇 초간의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살아온 보람을 충분히 느꼈다.”라고 보도했다.

 

 

파티마의 세 목동 -오른쪽이 루시아 수녀.jpg  

 <1917년 파티마의 세 목동 - 오른쪽이 루치아>

 

 

세 목동 중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는 1919년 스페인에 크게 유행했던 독감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루치아는 1925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폰테베드라에 있는 도로테아 수녀원에 들어갔고,

1928년에 갈리시아의 마을 투이에 있는 다른 수녀원으로 이적했다.

1947년 도로테아 수녀원을 거쳐 폴투갈의 코임브라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으며

2005년 2월 13일 97살의 나이에 선종했다.

 

 

루치아는 1925년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다시 만났으며,

1929년에도 마리아를 만났고, 주기적으로 마리아가 자기에게 발현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1931년 갈리시아의 발현에서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은 1930년 포르투갈의 주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발현 50주년을 맞아 파티마를 찾아 순례했다.

2000년 5월 13일 , 파티마를 세 번째로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를 시복했다.

 

 

 

발현한 마리아는 ‘세 가지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과연 그 비밀이 무엇인지가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음은 물론이다.

첫째와 둘째 비밀은 루치아 수녀가 1941년 8월 31일 레이리아-파티마의 주교에게 보낸 것이고,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가 1944년 1월 3일 작성한 것으로,

그녀가 본 환시의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 비밀들은 점차적으로 밝혀졌는데, 첫 번째는 지옥의 모습이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러시아가 언젠가는 그리스도교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었는데,

공산주의 소련과 동유럽의 화해로 증명됐다고 간주된다.

 

 

세 번째 비밀에 대해서는 온갖 추측이 있었다.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침내, 두 목동 시복식에서 그 비밀을 밝혔다.

그 내용은 1981년 5월 13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자신이 암살범에 피격된 사건의

예언이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비밀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가 고작 ‘예언’ 이나 하려고 발현하였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그 정수는 ‘회개와 반성’이다.

 

 

회개와 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쇄신’함은 물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를 씻어내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라는 엄중한 뜻을 전달하려고 발현하지 않았을까?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