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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75 예수의 외조부모


손자와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낙엽을 쓸고 있었다.

지렁이 한 마리가 구멍을 향해 잎 사이를 기어가고 있었다.

손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 지렁이를 구멍에 넣어줄래요.’

“안 될 껄. 저렇게 쭈굴쭈굴하고 말랑말랑한 지렁이를 어떻게 구멍에 집어넣어?”

손자가 할 수 있다고 우기자 둘이는 5 달러 내기를 했다.

손자는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더니, 헤어 스프레이를 들고 나와 지렁이에게 뿌렸다.

지렁이는 딱딱해지고 똑바로 펴졌고 손자는 쉽사리 지렁이를 구멍에 집어넣었다.

할아버지는 5달러를 손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헤어 스프레이를 받아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마당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또 5달러를 내밀었다.

손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5달러는 아까 주셨잖아요?’

할아버지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얘야, 이건 할머니가 주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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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모가 요셉과 마리아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상식이다.

마리아의 부모가 요아킴과 안나라는 것을 아는 이는 기독교에 대해서

꽤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170~180년경에 쓰여진 <야고보 원복음서>와 도미니코회 회원 빈첸시오

(Vincentius Bellovacensisc. 1190-1264?)의 <Speculum historiale - 역사의 거울>,

도미니코회 수도사이고 후에 제노바의 대사교가 된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1230~98)가 쓴

 <황금전설 Legenda aurea> 등에 요아킴과 안나의 얘기가 등장한다.


<야고보 원복음서>는 천주교에서 위경(僞經)으로 간주되지만

이 책은 초대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작품이었고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어서, 마리아의 집안에 관한 지식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에서 위경으로 정의한 만큼 이 책에 실린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마리아를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키운 요아킴과 안나의 생애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황금전설>은 중세의 대표적인 성인(聖人) 전설집으로서 중세로부터 근세에 걸쳐

그리스도교 도상(圖像)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처음에는 <성인 전설 Legenda sanctorum> 이라고 명명되었으나

신앙을 두터이 하고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황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의 전기가 아니라, 그때까지의 여러 전설을 모아,

특히 수도원과 민간에 전하는 전승, 구전 등을 첨가하여 편찬한 것으로

민간신앙적 색채가 농후하다.

<황금성인전> 이라고도 부른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나자렛에서 태어난 요아킴은

부유하고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나자렛에서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은 안나 20세에 결혼하여 경건하고 성실한 생활을 하였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부는 낙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20년이 지나자 요아킴은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였다.

집에 홀로 남겨진 안나 또한 울며 탄식기도를 바쳤다.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어느 날 안나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그녀가 곧 아이를 가질 것이며

그 아이는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안나는 그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겠노라고 약속한다.

요아킴 또한 기도 중에 이와 비슷한 환시를 보고 기뻐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들은 딸을 낳아 ‘마리아’ 라고 이름 지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자 요아킴과 안나는 하느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성전에서 종사하는 소녀로 바쳤다.


요아킴과 안나는 만년에 예루살렘에 살았다.

예루살렘에서 성모 마리아가 살던 장소에는 성 마리아 성당과 지하성당이 세워졌는데,

후일 그곳에 안나의 묘지가 있다고 알려짐으로서

성 요아킴 및 성 안나의 성당으로 개명되었다.


성녀 안나의 유해는 8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황제 유스티아노 2세에 의해 무덤 위에 웅장한 성당이 건립되었다.


안나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에 대한 공경은 그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550년 경 콘스탄티노플에 성녀 안나 성당이 봉헌되었고,

같은 시기에 안나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베들레헴에 성당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중세시대에는 성녀 안나에게 봉헌되는 성당이 급속히 늘어나고,

안나 성녀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그녀를 수호 성녀로 모시는 수도원도 많이 설립되었다.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7월 26일을 안나의 기념축일로 지정했다.


1972년 개정된 로마 미사경본에서 종전 8월 16일 요아킴의 축일과

7월 26일 안나의 축일을 7월 26일로 합쳤다.


요아킴과 안나가 특별한 공경을 받는 성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와 요셉 가정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결혼생활의 모범을

요아킴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는 설과,

대가족제도 하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되지 않는 성가정이 낯설었다는 이유가

계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요아킴은 ‘하느님께서 일어서게 하신다’ 라는 뜻이고,

안나는 ‘은총이 충만하다’라는 뜻이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