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40 복사 (服事 Altar boy, Altar server)

5만원짜리 지폐와 천원짜리가 지갑 안에서 만났다.
천원이 물었다.
“오랜 동안 못 만났네. 그동안 어딜 다녔었나?”
5만원이 대답했다.
‘여기 저기 많이 다녔네. 골프장에도 가고, 백화점에도 가고, 카지노에도 가고,
사우나에도 가고, 미장원에도 가고, 룸 싸롱에도 가고....’
그리고는 천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에 있었나?’
천원이 간단하게 말했다.
“나는 성당들만 돌아다녔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신부의 양 옆에 흰 옷을 입은 소년들이 서서
시중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을 복사라고 부른다.

복사는 사제의 예식 집전을 보조하는 평신도이다.
이들은 예식 중에 포도주와 성체, 성수 등을 나르거나, 종을 울리는 일들을 한다.
원래 이 일은 하급 제3급에 속하는 시종직(侍從職, acolythus)을 받은 성직자가 담당하였으나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주로 평신도가 복사를 하게 되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들의 경우,
부제품을 받기위해서 독서직과 함께 꼭 받아야하는 직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사의 역할은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신부들을 위하여,
미사를 보조하는 역할 이외에도 한국어 교사, 길 안내자, 번역가,
하인의 역할까지 담당하였고,  사제와 숙식을 함께하기도 했다.
또, 사제와 교우들의 중재역할을 함과 동시에, 신도 회장직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젊고 유능한 성인 남자들이 그 역을 담당했다.

이들은 고해를 준비시키고, 예비신자를 가르쳤으며, 고해 전송과 후송,
영성체 전송을 바치고, 제대를 준비하고, 보미사 곧 미사 복사를 하고, 행정업무도 담당했다.

기해박해(1839년) 때 순교한 정하상 성인은 유방제 신부의 복사였으며,
앵베르 주교가 입국한 이후 그의 복사가 되어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기해박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인 “기해일기”를 지은 현석문 성인은 샤스탕 신부의 복사였다.

복사들은 신앙심이 깊고 똑똑한 10∼11세의 소년들 중에서 선발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복사가 되기 위해서는 첫 영성체를 받아야 하며,
부모 모두 신자인 경우를 우선하여 선발하고 있다.
선발된 복사들은 신부, 수녀 또는 지도 교사로부터 성당 단위로 교육을 받으며,
교구 단위의 복사 학교를 통해 역할과 실습을 교육받기도 한다.
전례 중에는 보통 중백의(中白衣, surplice)를 입는다.

1969년에 발표된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에 의해 신부의 재량에 따라
여성과 소녀들도 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馬丁>

  • 김치순 2010.11.22 11:00
    벌써 40회나 수고했네요. 글로 표현하기 위해 자료 수집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네요. 정말 수고 많았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