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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린 날씨에 우산을 챙겨가야 하나 망설여진다. 기상예보를 다시 점검해 보고 조금 여유 있게 다니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 집을 일찍 나선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지하철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일찍 나선 날은 이상하게 버스도 지하철도 천곡(天谷)이 정류장이나 승강장에 도착하면 곧 바로 차를 대령한다. 마치 VIP가 된 기분이다. 당연히 안국역에는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안국역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준비해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천천히 둘러보겠다고 나섰다.

우리나라 독립역사는 안타깝고 속에서 열불이 나게 한다. 1900년 이전부터 일제는 한반도를 넘보고 있었고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기력했다. 대외 정보에 취약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지금도 정치지도자들은 자기들끼리 싸움만 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천곡의 어깨를 툭 치며 “일찍 나오셨네!”한다. 여산(如山) 한부영의 반가운 얼굴이다. 뒤이어 강암(岡岩) 윤계섭, 고천(軲川) 이충구가 나타난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전시물을 보고 있다고 하니까 고천 이충구가 “본 소감은 어때?” 하며 묻는다. 천곡은 대답은 “답답하다”이다.

안국역에서 대한민국 독립역사를 만나다.

지상으로 나오니 여범(如凡) 이원구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 병산(屛山) 최상민도 보인다. 웅봉(雄鳳) 김대진과 무일(无一) 정학철이 조금 늦겠다는 연락이다. 둘이 도착하자. 버스도 도착했다. 안국역에서 감사원까지 가는 마을버스다. 그런데 작은 버스에 만원이다. 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여범이 걸어가자고 한다. 몇 몇은 기다렸다 버스를 타자고 하는데 대부분 걷기 시작한다. 사실 안국역에서 감사원까지는 경사가 제법 있는 언덕길이다. 만만치 않은 길인데 걸으며 이 지역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옛날을 소환한다. 여범은 자기가 살던 집터를 가리키며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천곡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공간건축에서 상임고문으로 근무했던 추억을 떠 올렸다. 친구들과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니 어느덧 감사원을 지나 삼청공원 입구다. 어느 길이나 혼자 걸으면 지루할 수도 있다.

뜻하지 않게 북촌 마을을 걷다.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말 바위 길로 들어선다. 삼청공원은 언제나 음습한 분위기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땅이 항상 축축하다. 종로구에서 말바위로 올라가는 산길을 잘 다듬어 놓았다. 목재계단에 난간까지 깔끔하게 손질해 놓아 시민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해 놓았다. 말바위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려고 카메라 자동 셔터 기능으로 바꾸는 과정에 카메라가 반항하기 시작했다. MENU Button을 눌러 조정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모델들은 말바위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천곡은 쭈그리고 앉아서 카메라를 매만지고 있다. “야,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천천히 해~ 어차피 좀 쉬어야 하는데…” 여유 있는 목소리도 들린다. 친구들은 하나 둘 현장을 빠져나가 걷기 시작한다. 결국 촬영하지 못하고 말았다. 카메라맨의 수치다.

카메라맨의 수치… 모델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고 결국은 촬영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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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 입구 표지석에서 참가자 모두 카메라 앞에 섰다.
왼쪽부터 김대진, 정학철, 윤계섭, 박인순, 한부영, 최상민, 이원구, 이충구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간 담장이가 멋진 곡선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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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로 오르는 산길... 종로구청에서 정성드려 길을 다듬어 놓아 걷기에 상쾌하다...
자연은 이제 연초록의 향연을 마치고 짓푸른 계절로 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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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로 오르기 직전 전망대에서...
찌푸린 날씨 덕에 산행하기엔 좋으나 경치를 구경하기엔 불편하다. 오히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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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에 도착 다같이 사진 한 장에 담으려고 카메라를 자동 셔터 모드로 조작하는데 카메라가 반항한다. 
그동안 스마트폰에 밀려 장농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오랫만에 데리고 나왔더니 너무 격조했다고 땡깡을 부린다.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던 때는 언제고 새로 생긴 스마트폰만 데리고 다닌다고 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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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에서 카메라와 씨름하고 있는 천곡이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여범이 살짝 한 컷해서 카톡에 올린 것을 가져왔다.
자주 써야 기름기가 도는데 스마트폰에 밀려 뒷방마님 신세가 된 카메라를 앞으로는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 

말바위 안내소에 도착하니 썰렁하다. 예전의 검문검색하기 위해 살벌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구청 근무자 한 명 만이 안내소를 지키고 있다. 모두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거나 배낭에 웃옷을 넣으며 휴식을 취한다. 날씨는 흐려 시야확보가 어려워 수도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수도 서울의 모습에 관심도 없어 보인다. 카메라 작동을 시도해 본다. 여전히 어딘가 아픈 모양이다. 잘 작동이 되질 않는다. 시험삼아 셔터를 눌러 보았더니 화면이 하얗게 찍힌다. 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을 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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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아픈 곳을 쓰다듬어 카멜라를 정상으로 돌려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셔터를 누르니 화면이 하얗게 찍힌 것을 '뽀샵'으로 수정 보완해서 올려 보았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찍은 것처럼... 말바위 안내소 앞 벤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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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망대에서...

 

숙정문에 이른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무일이 여기까지 와서 문을 통과해야 한다며 숙정문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문을 통과하니 먼저 와 있던 친구들이 다 모여 있다. 숙정문(肅靖門)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으로 태조 5년(1396년)에 세웠다. 태종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문을 열어 두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어 창의문(彰義門)과 함께 오랜 시간 닫아 두기도 했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이었는데 언제 숙정문으로 바뀌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원래 지금보다 약간 서쪽에 지었던 것을 연산군 때 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숙정문은 열어 두면 안 된다는 풍수지리설 주장이 있어 오랜 시간 닫아 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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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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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 이충구가 촬영한 것을 잠시 빌려 왔다. 

 

이제부터는 정말 내려갈 일만 남았다. 산허리에 길을 내고 계단을 만들어 걷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간혹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다. 청운대 전망대를 거쳐 만세동방(萬世東方)에서 숨을 돌린다. 북악산 동쪽 계곡 중턱 약수터 바위에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곳을 만세 동방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홈통처럼 생긴 곳으로 모였다가 아래쪽으로 흘러내린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 후진들이 도착하며 불평을 토로한다. 길을 안내하며 가야지 뒤 쫓아오는 사람들이 길이 헷갈려 힘들었다는 것이다. 도중에 삼거리는 딱 한 군데 있다. 청운대 쉼터로 올라 가는 길이 있는 곳이다. 이곳으로 오르면 한양도성을 따라 북악산(일명 백악산) 정상을 경유하여 창의문(자하문)으로 내려간다. 여범은 이 삼거리에서 뒤를 향해 ‘만세 동방으로 오라’는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가 뒤에서 ‘만세동방’을 복창했다. 그런데 불평을 토로한 친구들은 더 뒤에서 오고 있어서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만큼 살아오고 나서 생각나는 것인데 우리는 내가 알고 있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가끔 하면서 살아왔다. 그로 인해 오해도 생기고 오해는 결국은 분쟁으로 이어져서 끝내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 원수가 되는 일도 있다.

만세 동방으로 오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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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뒷산 전망대로 가는 데크에서 고천, 천곡, 여범과 한 컷... 여범은 옥우산우회 회장으로서 산우회를 이끌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회장 자리를 물려 준 천곡은 여범의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 쉬운 자리가 아니다. 과거 한창일 때 참가회원이 30~35명일 때는 정말 회장 자리가 빛났다. 그러나 요즈음은 참석율이 낮고 관심도도 낮아 모임을 운영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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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흐린 날씨에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숭례문에 이르는 수도 서울 도심의 축이 보인다.

대통문을 통과하여 옛날 출입이 통제되었던 청와대 구내로 진입한다. 54년만에 개방된 한양도성 북악산(일명 백악산)의 탐방로이다. 백악정에서 다시 휴식을 취한다. 백악정 앞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고 청와대 담장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담장을 끼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삼청동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궁정동 칠궁 쪽으로 내려간다. 모두 모인 김에 천곡의 카메라 자동 셔터 기능 시험을 했다. 오징어 다리 삼각대를 난간 모서리에 고정하고 자동 셔터를 눌렀다. 작동한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천곡이 카메라를 다시 점검하면서 정상 작동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다행히 먹혔다. 카메라가 아팠던 곳을 특별히 치료해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병을 고친 모양이다. 집에 가서 좀더 소상히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잘 치료해 주어야겠다. Flash가 터지고 카메라가 작동하니까 모두들 “와아~”하고 함성을 지른다.

카메라가 스스로 병을 고치고 정상 작동했다… 모두들 “와아~”하고 함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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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철쭉을 배경으로 백악정에서 고천 이충구와 한 컷,  뒤로 청와대 담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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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정에서 전원 촬영 성공... 문어발 삼각대를 난간에 걸치고 자동 셔터로... 카메라의 화가 풀렸나 보다... 자주 같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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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 칠궁으로 하산길은 내리막이다. 화면 뒤의 청와대 담장의 물매(기울기)가 그 급함을 알려준다. 
무일 정학철과 병산 최상민을 잠시 불러 세워 한 컷! 주변의 연초록과 두 사람의 복장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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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으로 내려왔다. 경기중학교 시절 천곡은 궁정동에서 살았다. 그런데 세월이 낯선 동네로 인지하게 한다. 
어느 외국 도시의 한가한 모습이 연상된다. 궁정동 성당의 첨탑이 더욱 더 외국 도시의 냄새를 짙게 만든다. 

 

궁정동 칠궁 뒤쪽 날머리로 나오니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우천 정병호와 만나기로 되어 있는 ‘신의주 순댓국집’까지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고 도보로 가는 방법도 있다. 도보로 갈 경우 궁정동-효자동-옥인동-지하철 경복궁역으로 내려간다. 소위 서촌 마을을 겉보기만 하고 내려가는 것이다. 여기서도 버스를 탈 것인가 말 것인가 상의도 없이 냅다 걸어 내려간다. 신의주 순댓국 밥집까지 오며 친구들의 “배고파~~~”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우천이 기다리고 있다. 얼핏 보니 멀쩡하다. 안색도 좋고 전혀 환자 모양이 아니다. 다리를 보니 그제서야 환자의 모습이다. 복숭아뼈를 다쳤으니 소프트 깁스를 했다. 지팡이는 필수… 3월30일 낮에 모임에서 약간(?)의 술을 마시고 귀가 후 집에서 휴식 중 강아지가 보채서 집을 나와 평소 잘 다니던 코스로 산책을 마치고 귀가 중 숏 컷 (Short Cut)으로 오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운 좋게 강북삼성병원에서 바로 수술 일정이 잡혀 수술 후 3일 후 퇴원했다고 한다. 의사 말로는 7주간 안정하라고 했다는데 3월30일부터 따지면 7주가 되는 날이 5월20일이다. 우천이 공을 들여 준비한 ‘졸업60주년 기념행사’가 딱 걸린다. 천곡이 말렸다. “집에서 푹 쉬라.”고…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이번 졸업60주년 기념여행은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횟수가 잦다. 지금은 조심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면 이리 뛰고 저리 뛸 일이 생긴다. 지금 마음대로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되질 않는다.

우천 정병호와 만나다… 천만다행이다. 졸업60주년 기념여행에 나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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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범이 신기한 듯 우천 기브스한 다리를 내려 본다. 환자답지 않은 우천은 '운이 좋았다"고 자평한다.
                  운 좋은 것은 다치지 않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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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자동 셔터 작동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음식점 여주인은 "어르신들 뵙기가 참 좋다"고 자천 카메라 감독으로 나섰다. 
병산은 우천의 지팡이가 탐나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지팡이 옆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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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선 우천과 기념촬영을 했다. 기념할 일은 아니지만 다시는 다치지 말라는 염원을 담아서...

오늘 참가한 8명의 노익장들은 평소 옥우 산우회에서 자주 만났던 얼굴들이다. 역시 그동안 꾸준히 등산활동을 했던 저력이 보인다. 오늘 주행 거리는 모두 합쳐 7.5km이다. 이 거리를 3시간 30분만에 주파했다 물론 도중에 쉬는 시간 포함해서다. 이제 한국 나이로 80을 갓 넘긴 그야말로 옛날 같으면 고령이라고 집에 박혀 있을 나이다. 그러나 모두들 씩씩하게 걷는다. 자세도 바르다. 천곡이 유심히 살피니 어느 누구 하나 자세가 기운 친구가 없다. 참 다행한 일이다. 옥우산우회 회원 중에 이미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들도 있다. 산에 다닌다고 다 건강해 진다는 법칙은 없다. 건강은 타고 난 DNA가 좋아야 하고 중간에 큰 사고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후천적으로 부지런히 운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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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천곡이 애용하는 App. '산길샘'이 이날 운행기록을 알려 준다. 7.44km를 3시간 34분 동안 걸었다고 한다.
평균속도가 2.29km/hour다... 오른쪽은 천곡이 분당골 야탑산채 천곡집을 나서 다시 귀가한 동안의 총 걸음수와 칼로리 소모량을 알려준다. 16,742 걸음수에 1,981Kcal를 소모했다고 알려준다. 권장 걸음수/일 6,000보를 훨씬 넘었고, 소모 열량도 많아 신의주 순대국 만으로는 보충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옥우산우회 회원 여러분, 모두 지금처럼 건강하시라!!!